이 드라마, 진짜 위험해요.
처음에 시즌1 봤을 때는 그래도 버텼어요. 이탈리안 비프 샌드위치 장면에서 좀 힘들었지만 어찌저찌 참았거든요. ‘나 이제 드라마 먹방에 흔들릴 나이가 아니야’ 하면서요.
근데 시즌2가 문제였어요.
카르미가 코펜하겐으로 연수를 떠나고,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새로운 음식들을 배우는 그 에피소드들. 그 화들을 연달아 보다가 새벽 한 시에 냉장고를 뒤졌어요. 냉동실에서 감자 꺼내서 뇨키를 만들어보겠다고 삶기 시작했어요. 나이 오십 넘은 직장인이, 새벽에, 뇨키를요.
아내가 부엌 불 켜진 거 보고 나와서 저를 한참 쳐다보더니 그냥 방으로 들어갔어요.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었거든요. 더 베어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를 못 할 것 같았고요.
더 베어 시즌2는 그런 드라마예요. 시즌1이 거칠고 날것이었다면, 시즌2는 더 섬세하고 더 집요하게 식욕을 건드려요. 그리고 더 위험합니다. 저처럼 새벽에 뇨키 만드는 사람이 생겨요.
더 베어 시즌2, 왜 음식이 더 강렬해졌냐면
카르미가 파인다이닝을 배우는 그 과정
시즌1의 더 베어는 시카고 서민 샌드위치 가게가 배경이었어요. 거칠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주방. 음식도 그랬어요. 투박하지만 힘 있는 음식들.
시즌2에서 카르미가 코펜하겐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연수를 가면서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플레이팅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구성되고,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섬세해지고, 맛보다 먼저 눈이 압도되는 음식들이 나와요.
근데 이상한 건, 그 화려한 파인다이닝 음식들이 오히려 더 먹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눈으로는 ‘저건 저 레스토랑 가야 먹겠다’ 싶은데, 입에서는 침이 고이는 그 모순. 카르미가 코펜하겐 주방에서 처음으로 뇨키를 완성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 모순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카메라가 음식을 담는 방식이 다르다
더 베어의 음식 촬영이 여타 드라마와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어요. 음식을 대상으로 찍는 게 아니라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찍는다는 거예요.
재료가 손질되고, 불을 만나고, 형태가 잡히고, 플레이팅 되는 그 전 과정을 카메라가 놓치지 않아요. 완성된 음식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음식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줘요.
그러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음식에 얼마나 손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다 알게 돼요. 알고 나면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저 과정을 다 거쳐서 완성된 거라는 걸 알면서 보는 한 입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가장 강렬했던 장면들 — 카르미의 손이 만든 것들
뇨키 — 새벽 한 시 사고를 친 그 음식
시즌2에서 카르미가 코펜하겐 연수 중에 처음으로 뇨키를 제대로 배우는 장면이 있어요.
감자를 삶아서 으깨고,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를 섞어서 반죽하고, 그걸 길게 굴려서 조각조각 잘라낸 다음 포크로 결을 내는 그 과정. 완성된 뇨키를 끓는 물에 넣었을 때 처음엔 가라앉았다가 익으면서 위로 둥실 떠오르는 그 순간. 카르미가 그걸 꺼내서 버터 소스에 빠르게 버무리는 그 동작.
그 장면이 너무 디테일하게 찍혀 있어서,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감자 삶는 냄새가 났어요. 진짜로요. 화면에서 냄새가 날 리 없는데 전분 냄새가 났고, 버터가 팬에서 녹으면서 나는 고소한 냄새도 났어요. 이게 더 베어가 얼마나 집요하게 감각을 자극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뇨키는 사실 한국에서 그렇게 흔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면 있긴 한데 파스타만큼 익숙하지는 않아요. 근데 카르미가 만드는 걸 보고 나면 낯선 음식이 아니에요. 저 감자와 밀가루와 계란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알고, 그 과정을 눈으로 봤으니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식욕에도 영향을 미쳐요. 더 베어를 보면 낯선 음식도 아는 음식처럼 당겨요. 이게 이 드라마가 특히 무서운 이유예요.
시즌2의 오믈렛 장면 — 세상에서 가장 긴장되는 달걀 요리
더 베어 시즌2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오믈렛 장면이에요.
카르미가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프렌치 오믈렛을 배우는 그 에피소드. 셰프가 “완벽한 오믈렛 하나를 만들 수 있으면 어떤 주방에서든 살아남는다”고 하는 대사와 함께, 카르미가 몇 번이고 오믈렛을 실패하고 다시 만드는 그 반복.
오믈렛이 뭐가 어렵냐, 싶을 수 있어요. 달걀 풀어서 팬에 부으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요.
근데 프렌치 오믈렛은 달라요. 색깔이 안 변해야 해요. 노르스름하게 익혀서는 안 되고, 겉이 완전히 하얗거나 아주 연한 크림색을 유지해야 해요. 그러면서도 안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계란이 완전히 응고되지 않은 상태로. 이 상태를 만들려면 불 조절과 팬을 흔드는 속도가 거의 예술에 가까워야 해요.
카르미가 드디어 완벽한 오믈렛을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그 달걀 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어요. 겉은 크림처럼 매끄럽고 속은 흘러내릴 듯 말 듯한, 반숙도 완숙도 아닌 그 절묘한 상태. 플레이팅하자마자 먹어야 하는, 1분을 넘기면 안 되는 그 긴박함까지.
달걀 하나로 그렇게 긴장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이 드라마의 힘이에요.
리가토니 알라 보스카이올라 — 이 이름부터 이미 맛있는
시즌2에서 카르미가 레스토랑 오픈 메뉴로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하는 리가토니 알라 보스카이올라(Rigatoni alla Boscaiola). 숲에서 온 파스타라는 뜻인데, 야생 버섯과 이탈리안 소시지, 크림, 파마산 치즈가 들어가는 파스타예요.
리가토니가 짧고 두꺼운 튜브 모양이잖아요. 그 안쪽으로 크리미한 소스가 꽉 차는 게 이 파스타의 묘미인데, 드라마에서 카르미가 리가토니를 소스 팬에서 마지막으로 버무리는 장면이 있어요.
파스타 면이 소스를 흡수하면서 표면에 윤기가 생기고, 버섯 조각이 군데군데 박혀서 식감을 예고하고, 파마산이 녹아서 소스와 일체가 되는 그 질감. 거기다 이탈리안 소시지에서 나온 지방이 크림과 섞이면서 달큰하고 깊은 향이 올라오는 그 이미지.
이걸 보면서 이미 입 안에서 그 맛이 시뮬레이션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크리미하면서 버섯 향이 은은하고, 면을 씹으면 소시지 조각이 나오면서 짭조름함이 터지고. 파마산의 감칠맛이 마지막에 코 끝까지 올라오는 그 여운.
리가토니 보러 마트 가서 리가토니 샀어요. 집에 펜네 있었는데 리가토니 사러 갔어요.
더 베어 음식 맛의 실체 — 왜 파인다이닝이 저렇게 당기냐면
요리는 감정이다, 더 베어가 가르쳐준 것
더 베어에서 카르미가 만드는 음식들이 유독 맛있어 보이는 데는 레시피 이상의 이유가 있어요.
카르미는 음식을 만들 때 감정을 담아요. 형에 대한 죄책감, 레스토랑에 대한 책임감, 팀에 대한 마음. 그 모든 감정이 주방에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녹아있어요.
그래서 카르미가 플레이팅을 완성하고 접시를 내밀 때, 그게 단순한 음식으로 안 보여요. 뭔가를 전달하는 행위처럼 보여요. 그 음식을 받는 사람이 무언가를 느낄 거라는 걸 알면서 만드는, 그 의도가 화면에서 느껴지거든요.
감정이 담긴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건 당연한 거예요.
파인다이닝인데 먹고 싶은 이유
파인다이닝 음식은 보통 ‘저기 가서 먹어야지’라는 생각은 들어도 ‘지금 당장 먹고 싶다’는 충동까지 오지는 않잖아요. 어딘가 나와는 먼 세계 같고, 예약하고 차려입고 가야 하는 그 무게감이 욕망 사이에 끼어드니까요.
근데 더 베어의 파인다이닝 음식은 달라요. 카르미가 만드는 과정을 다 보여주기 때문에, 저 음식이 감자에서 시작하고 버터에서 시작하고 달걀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아요. 재료는 나도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저건 저기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저렇게 만들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물론 카르미처럼 만드는 건 다른 문제지만, 적어도 그 충동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중요해요.
그 현실감이 새벽 한 시에 저를 냉장고 앞으로 끌어다 놓은 거예요.
새벽 한 시의 뇨키 도전기 — 그리고 처참한 결과
더 베어 시즌2 네 화를 연달아 보고 난 새벽이었어요.
뇨키 장면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어요. 감자 삶고, 으깨고, 반죽해서, 포크로 결 내는 그 과정. 보면서 ‘이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었거든요.
냉장고 열어봤더니 감자 두 개가 있었어요. 계란도 있고, 밀가루도 있었어요. 재료가 다 있는 거잖아요.
감자를 삶았어요. 20분쯤 걸렸어요. 그 사이에 나머지 화를 봤어요. 감자가 익는 동안 카르미는 오믈렛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감자 삶고, 뜨거울 때 포크로 으깼어요.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요. 물기가 많이 남아있어서 밀가루를 엄청나게 많이 넣어야 반죽이 됐어요. 결국 뇨키가 아니라 거의 감자 수제비 같은 게 만들어졌어요.
끓는 물에 넣었는데 둥실 안 떠올랐어요. 카르미 뇨키는 완벽하게 떠올랐는데 제 뇨키는 냄비 바닥에 눌러붙어 있었어요.
건져내서 그냥 버터에 볶아 먹었어요. 맛은 있었어요. 뇨키라고 부르기 민망한 형태였지만, 감자와 버터가 합쳐진 그 고소함은 진짜였어요. 새벽 두 시에 혼자 소파에 앉아서 먹는데, 드라마에서 카르미가 완성한 뇨키랑 비교하니까 웃음이 났습니다.
주말에 제대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 뇨키 성공기
실패를 딛고 주말에 다시 도전했어요. 이번엔 제대로 방법을 찾아보고 시작했어요.
뇨키 실패 없이 만드는 핵심 3가지
첫째, 감자는 삶지 말고 구워요.
이게 핵심이에요. 감자를 삶으면 수분이 너무 많이 생겨서 밀가루를 많이 넣어야 해요. 그러면 뇨키가 무거워지고 퍽퍽해지죠. 대신 오븐에서 굽거나, 전자레인지로 익히면 수분이 자연스럽게 날아가면서 포슬포슬하게 돼요.
전자레인지 방법은 간단해요. 감자에 포크로 여러 군데 구멍 뚫고, 물에 살짝 적신 키친타월로 감싸서 5~6분 돌리면 돼요. 뜨거울 때 칼로 반 잘라서 숟가락으로 속만 파내면 준비 끝이에요.
둘째, 밀가루는 최소한으로.
뇨키 반죽의 황금 비율은 으깬 감자 200g에 밀가루 50~60g 정도예요. 반죽이 손에 살짝 달라붙는 느낌이 맞아요. 너무 뚝뚝 떨어지면 밀가루 더 넣고, 너무 딱딱하면 계란 노른자 하나 추가해요. 계란 노른자가 반죽을 부드럽게 묶어주거든요.
셋째, 반죽은 오래 치대지 않는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발달하면 뇨키가 질겨져요. 재료가 섞이면 바로 성형으로 넘어가야 해요. 반죽을 길게 굴려서 1.5~2cm 길이로 잘라내고, 포크 등에 살짝 눌러서 결을 내면 소스가 더 잘 붙어요.
소스는 브라운 버터로
카르미가 드라마에서 뇨키를 버무리던 소스는 세이지(sage) 버터예요. 버터를 팬에서 천천히 녹여서 갈색이 될 때까지 가열하면, 견과류처럼 고소하고 진한 브라운 버터가 돼요. 거기에 세이지 잎 몇 장 넣어서 향을 내고, 익힌 뇨키를 넣어서 버무리면 끝이에요.
세이지는 수입 식품 코너나 온라인에서 살 수 있고, 없으면 로즈마리로 대체해도 충분해요. 마지막에 파마산 치즈 갈아서 올리면 카르미 주방이 저희 집 부엌으로 소환되는 기분이에요.
두 번째 도전의 결과
성공이었어요. 완벽한 성공.
뇨키가 끓는 물에서 둥실 떠올랐을 때의 그 기쁨. 드라마에서 봤던 그 장면이 제 냄비에서 재현되는 그 순간이요. 혼자 부엌에서 “오” 소리를 냈어요. 아무도 없었는데.
브라운 버터에 버무린 뇨키를 한 입 먹었을 때, 겉은 살짝 바삭하고 안은 보드랍게 씹히면서 버터의 고소한 향이 퍼지는 그 맛. 파마산이 녹으면서 더해지는 감칠맛까지.
카르미 거랑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나한테는 충분했어요. 아니,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어요.
더 베어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
더 베어 시즌3까지 다 봤는데, 볼수록 카르미가 진짜 셰프가 되어가는 과정이 음식에서 느껴져요. 시즌1의 투박한 에너지에서, 시즌2의 섬세한 배움으로, 시즌3에서는 그 둘이 합쳐지는 지점이 보이거든요.
음식 장면도 시즌이 지날수록 더 정교해져요. 카메라가 더 가까이 들어오고, 조리 과정이 더 세밀하게 잡히고, 완성된 음식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의 정적이 더 길어져요. 그 정적이 보는 사람의 식욕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시간이에요.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저는 또 볼 거예요. 그리고 또 새벽에 냉장고를 열겠죠. 그 사이클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요.
오늘 저녁, 뇨키 어때요
더 베어 아직 시즌2 안 보신 분들, 시즌1 봤다면 바로 이어보세요. 음식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 해요.
그리고 뇨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감자 두 개, 밀가루 조금, 계란 노른자 하나. 재료는 이게 전부예요. 주말 오후 한 시간만 내면 카르미 주방 분위기를 우리 부엌에서 낼 수 있어요.
리가토니 파스타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들은— 마트에서 리가토니 면만 사면 돼요. 펜네 있어도 리가토니 사세요. 드라마 보고 나면 리가토니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생겨요. 그게 맞는 기분이에요.
다음엔 더 베어에서 나오는 오믈렛 직접 도전한 후기로 돌아올게요. 프렌치 오믈렛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배울 예정입니다. 카르미가 수십 번 실패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만, 그래도 해볼 거예요.
오늘 저녁은 뇨키입니다. 버터에 지글지글 구워서 파마산 듬뿍 올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