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궁중음식이 20년이 지나도 침샘을 자극하는 이유

솔직히 대장금은 두 번 봤어요.

처음엔 방영할 때 봤고, 두 번째가 바로 요 근래예요. OTT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에이 다 아는 내용인데’ 하면서 틀었다가— 1화 끝날 때쯤에 이미 소파에서 못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밤이었어요.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서 봤는데, 대장금을 보다 보면 신기하게 또 배가 고파져요. 방금 밥 먹었는데. 장금이가 수라간에서 음식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위에서 신호가 오는 거예요. 특히 전복죽 장면. 그 장면에서 저는 진짜로 못 버텼어요.

새벽 두 시에 냄비 꺼내서 죽을 끓이는 50대 직장인.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면 분명히 하면 안 되는 짓인데, 그 순간만큼은 이성이 식욕 앞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대장금이 그런 드라마예요. 20년이 지나도, 세 번을 봐도, 배고프게 만들어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드라마냐고요.


세 번 봐도 빠져드는 대장금, 다시 봐도 배고픈 이유

음식이 드라마의 언어다

대장금을 단순히 사극으로만 보면 놓치는 게 있어요. 이 드라마에서 음식은 배경이 아니에요. 음식이 대사고, 음식이 감정이고, 음식이 사건입니다.

장금이가 억울함을 증명할 때도 음식으로 하고, 사랑을 표현할 때도 음식으로 하고, 적에게 맞설 때도 음식 실력으로 맞서죠. 음식 하나하나에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가 통째로 담겨 있으니까, 그 음식이 화면에 나올 때 단순히 먹음직스러운 게 아니라 묵직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세 번 보면서 새삼 느낀 게 있어요. 처음엔 스토리에 집중해서 봤고, 두 번째엔 아이한테 설명해주면서 봤는데, 세 번째에는 음식 장면만 따로 뜯어보게 되더라고요. 저 재료가 뭔지, 저 조리법이 뭔지, 저 색감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보면 볼수록 대장금의 음식 장면이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가 보여요. 드라마 제작 당시 궁중음식 전문가들이 실제로 참여해서 고증을 맞췄다는 게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이영애라는 배우가 음식 앞에 서는 방식

이영애가 장금이로 수라간에 서는 장면들. 음식 앞에서 눈이 반짝이는 그 표정, 재료를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 맡는 그 섬세한 동작들,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드는 그 순간들.

배우가 요리에 진짜 몰입해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연기인 걸 알면서도, 저 손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진짜 요리하는 사람 같아서 음식도 진짜처럼 보이는 거예요.

특히 전복죽을 끓이는 장면에서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가면서 죽의 농도를 확인하는 그 동작. 죽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일정한 속도로 계속 저어주는 그 꼼꼼함. 그게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 저는 진짜 냄비에서 솔솔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화면에서 냄새가 날 리 없는데. 근데 나는 거예요, 분명히. 이게 대장금의 마법이에요.


가장 강렬했던 그 장면 — 전복죽 앞의 장금이

전복죽이 나오던 그 장면

대장금에서 전복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면, 기억하시는 분 많을 거예요.

수라간에서 수라간 나인들이 임금의 수라를 준비하는 장면인데, 장금이가 전복을 손질하는 과정부터 카메라가 따라가요. 전복의 내장을 걷어내고, 솔로 껍데기를 문질러 닦고, 살 부분을 칼로 얇게 저며서 쌀과 함께 냄비에 넣는 그 과정.

냄비에서 쌀이 서서히 퍼지면서 전복 향이 배어드는 그 느낌이 화면으로 전달될 때, 저는 이미 위가 반응하고 있었어요.

전복죽의 색이 특별해요. 일반 흰죽이랑 달리, 전복 내장을 넣으면 죽이 은은한 초록빛을 띠거든요. 드라마에서 그 색이 제대로 잡혔어요. 뽀얀 흰색 베이스에 초록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그 색. 거기다 전복 살 조각이 올라가 있는 그 비주얼.

그 죽 한 그릇을 임금에게 올리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위에서 한번 내려다보는 앵글이 있어요. 그 순간에 저는 배가 고팠어요. 저녁을 방금 먹었는데.

왜 그 장면이 유독 맛있어 보였냐면

전복죽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아요.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먹어봤거나, 아프거나 기운 없을 때 누군가 끓여줬거나, 아니면 여행지 제주에서 먹어봤거나.

그 기억이 있는 음식이에요.

드라마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 저한테는 어머니가 제가 몸 안 좋을 때 밤새 전복죽 끓여주시던 기억이 올라왔어요. 뚜껑 열 때 풍기던 그 고소하고 진한 냄새, 처음엔 너무 뜨거워서 조금씩 떠서 호호 불어먹던 그 느낌, 먹고 나면 속이 따뜻하게 차오르던 그 안도감.

아는 맛이 무섭다는 게 이래요. 화면에서 보는 순간 뇌가 기억을 끄집어내서 입 안에서 그 맛을 재현해버려요. 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인데, 착각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그 감각.

장금이의 전복죽 장면이 배고픈 게 아니라 그리운 감각을 불러일으킨 거예요. 그래서 더 못 참은 것 같아요.


대장금 수라상의 다른 음식들도 만만치 않다

구절판 — 눈이 먼저 배부른 음식

전복죽만큼이나 대장금에서 자주 등장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구절판이에요.

구절판(九折坂)은 이름 그대로 아홉 칸으로 나뉜 그릇에 여덟 가지 재료와 밀전병을 담아내는 궁중 음식이에요. 중앙에 얇고 하얀 밀전병을 쌓아두고, 주변 여덟 칸에 색색깔의 재료들이 가지런히 담기는 그 모양새가— 사진 찍기도 전에 눈이 먼저 먹어버리는 음식이에요.

드라마에서 구절판이 수라상에 올라오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천천히 그 색깔들을 훑고 지나가요. 노란 달걀 지단, 초록 오이, 붉은 당근, 검은 표고버섯, 흰 밀전병. 다섯 가지 색이 팔각형 그릇 안에 정갈하게 들어앉은 그 비주얼.

궁중 음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를 처음 깨달은 게 대장금 덕분이었어요. 음식이 예술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구절판 장면 보면서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먹는 방식도 우아해요. 밀전병 위에 재료들을 조금씩 올려서 돌돌 말아 먹는데, 그 과정이 음식을 즐기는 의식처럼 느껴지거든요. 급하게 먹는 게 아니라 천천히, 내가 고른 재료들로 나만의 한 입을 만드는 그 과정.

신선로 — 겨울밤에 보면 절대 안 되는 그것

대장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신선로(神仙爐)예요.

도넛 모양의 가운데가 뚫린 특수 냄비에 숯불을 피우고, 그 주변으로 고기, 생선, 채소, 해산물을 층층이 담아 끓여 먹는 궁중 전골이에요. 끓는 동안 재료들이 서로 맛을 교환하면서 국물이 점점 진해지는 음식인데, 드라마에서 그 냄비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장면이 나오면 겨울밤에는 진짜 버티기가 힘들어요.

특히 한겨울에 드라마 다시 보다가 신선로 장면 만나면, 저 냄비 앞에 앉아서 끓는 거 기다리면서 고기 건져 먹고 싶다는 욕망이 구체적으로 올라와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 먼저 건질지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새벽 두 시, 냄비를 꺼냈습니다

대장금 5화까지 달렸을 때였어요. 시계는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장금이가 전복죽을 끓이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결정을 내렸어요.

전복은 없었어요. 새벽 두 시에 전복을 구할 방법이 없죠. 대신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계란이 있었고, 참기름이 있었고, 쌀이 있었어요. 그리고 냉동실에 작은 새우가 있었습니다.

전복죽은 아니지만 새우죽으로 타협했어요. 냉동 새우 몇 마리 꺼내서 해동하고, 쌀 반 컵에 물 세 컵 넣고, 참기름 두르고 뭉근하게 끓이기 시작했어요.

죽이 끓는 20분 동안 나머지 화를 봤어요. 냄비 저어주면서, 화면도 보면서. 장금이는 수라간에서 전복죽을 완성하고 있었고, 저는 부엌에서 새우죽을 완성하고 있었어요.

맛은 어땠냐고요. 진짜 맛있었어요. 새벽에 혼자 끓인 새우죽인데, 참기름 고소한 향이 부엌에 가득 퍼지고, 죽이 적당히 퍼져서 한 숟갈 뜰 때마다 부드럽게 넘어가고. 위가 따뜻하게 채워지는 그 안도감.

다음 날 아침에 속은 좀 부대꼈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한 점.


주말에 진짜 전복죽 도전했습니다

그 새벽 새우죽으로는 성이 안 찼어요. 주말에 제대로 된 전복죽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재료 준비 — 전복 손질이 핵심

전복은 마트 수산 코너에서 살아있는 걸 구했어요. 두 마리에 만오천 원 정도 했어요. 궁중 수라상에 올라갈 전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선한 거 써야 맛이 나요.

전복 손질이 좀 번거롭긴 한데, 한번 해보면 어렵지 않아요. 숟가락을 껍데기와 살 사이에 끼워서 살을 떼어내고, 내장을 분리해요. 내장은 버리지 마세요. 이게 죽에 초록빛을 내고 깊은 감칠맛을 주는 핵심 재료예요.

살은 칼로 얇게 편으로 썰고, 내장은 체에 걸러서 퓨레처럼 만들어두면 준비 끝입니다.

만드는 법 — 불 조절이 전부예요

1단계: 참기름에 볶기. 냄비에 참기름 한 큰술 두르고, 불린 쌀 한 컵을 넣어서 중불로 볶아요. 쌀알이 투명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3~4분. 이 단계가 죽의 고소한 베이스를 만들어요. 귀찮다고 건너뛰면 맛이 확 달라지니까 꼭 해야 해요.

2단계: 전복살 함께 볶기. 볶아둔 쌀에 얇게 썬 전복살 넣고 30초 정도 같이 볶아요. 전복 향이 기름에 배어들기 시작하는 타이밍이에요.

3단계: 물 붓고 끓이기. 물 여섯 컵 붓고 강불로 올려요. 한 번 팔팔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요. 여기서부터가 인내심 싸움이에요. 최소 25분, 중간에 계속 저어줘야 해요. 냄비 바닥에 눌어붙으면 쓴맛이 나거든요.

4단계: 내장 넣기. 쌀알이 충분히 퍼지고 죽이 농도가 잡혀갈 때, 체에 걸러둔 전복 내장을 넣어요. 이때부터 죽 색이 달라지기 시작해요. 하얗던 죽이 연두빛으로 물들면서 향도 깊어져요. 2~3분 더 끓이면서 간을 봐요.

5단계: 간하고 마무리. 소금으로만 간해요. 간장 넣으면 색이 탁해지고 전복 본연의 맛을 잡아먹어요. 소금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더 두르면 완성. 그릇에 담고 채 썬 전복살 몇 조각 올리면 비주얼도 살아나요.

후기 — 드라마 속 그 색이 나왔습니다

처음에 내장 퓨레 넣었을 때 반신반의했어요. 이게 진짜 초록색이 되나, 싶었거든요.

됩니다. 됩니다, 진짜로. 죽이 연두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보면서 ‘이게 대장금에서 나온 그 색이다’ 하고 혼자 감탄했어요.

맛은요. 솔직히 감탄스러웠어요. 전복죽을 밖에서도 몇 번 사 먹어봤는데, 이번에 직접 만든 게 그 어느 것보다 진한 맛이 났어요. 전복 내장의 바다 향이 은은하게 베이스로 깔리고, 살의 쫄깃한 식감이 부드러운 죽과 대비되면서, 한 그릇을 비우고 났을 때 속이 든든하면서도 가볍고.

아내한테 줬더니 두 그릇 먹었습니다. 말이 없었어요. 맛있으면 말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대장금이 궁중음식에 대해 알려준 것

세 번 보고 나서 느낀 거예요.

대장금의 궁중음식이 지금도 감동적인 건 화려해서가 아니에요. 재료 하나하나를 다루는 정성, 계절에 맞는 식재료를 고르는 눈, 먹는 사람의 몸 상태를 헤아리는 마음. 그게 담겨 있어서예요.

장금이가 왕의 수라를 준비할 때, 그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 분이 요즘 어디가 안 좋으신지, 무엇이 필요하신지를 음식으로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게 조선시대 궁중 의식(醫食)의 정신이고, 그 정신이 드라마 전체에 흐르고 있어요.

나이 오십 넘어서 다시 보는 대장금은 그래서 첫 번째 볼 때랑 달라요. 젊을 때는 장금이의 파란만장한 스토리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음식 장면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보여요. 저 재료에 저 정성이 들어가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지금의 내가 더 잘 알거든요.


오늘 저녁은 전복죽 어때요

대장금 아직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다시 볼 기회가 생긴 거예요. OTT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사극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음식 드라마로 봐도 충분히 재밌거든요.

그리고 이미 보신 분들, 오늘 다시 한 화만 틀어보세요. 수라간 장면이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배가 고파질 거예요. 그건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예요.

전복이 부담스러우면 새우죽이라도 괜찮아요. 참기름에 쌀 볶아서 뭉근하게 끓이면 그게 오늘 밤의 수라상이 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정성이 들어가면 다 맛있어요. 그게 대장금이 20년 동안 가르쳐준 거니까요.

다음엔 대장금 속 구절판 직접 만들기에 도전해볼게요. 재료 여덟 가지 준비하는 게 벌써 막막하긴 한데— 장금이가 수라간에서 그걸 혼자 해냈는데 저라고 못 할 이유는 없잖아요.

오늘 저녁 따뜻하게 드세요.


대장금 보다가 야식 드신 분, 혹은 대장금 때문에 전복죽 만들어본 분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저 혼자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닌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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