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철인왕후〉는 웃음이 넘치는 코미디 사극이지만, 실제 조선 헌종 시대의 역사는 전혀 웃음이 없었습니다. 헌종은 1834년 여덟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할아버지 순조가 죽고 아버지 효명세자마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것입니다. 여덟 살짜리 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 권력은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통해 쥐고 있었습니다. 수렴청정이란 왕이 어릴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신 정사를 돌보는 제도입니다.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이 시기 세도정치의 핵심 가문인 안동 김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왕실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헌종 시대 왕실 여성들, 특히 대군부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세도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시대에, 왕실의 남성들조차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왕실 여성들은 더욱더 좁은 공간 안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세도정치와 왕실 여성들의 위축
세도정치(勢道政治)란 왕을 대신해 특정 가문이 국정을 좌우하는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조선 후기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번갈아 세도를 잡았습니다. 이 시기에 왕실 남성들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되었습니다. 왕이 직접 결정해야 할 사안들도 세도 가문의 입김이 작용했고, 왕실 가족들의 인사나 생활도 세도 가문의 통제 아래 놓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대군부인들의 삶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그나마 왕의 배려나 왕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세도정치 시대에는 세도 가문과 얼마나 가까운지가 모든 것을 결정했습니다.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가문 출신의 대군부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외 가문 출신들은 점점 왕실의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헌종 시대는 조선 왕조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는 서양 세력이 문을 두드리고, 내부에서는 세도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왕실의 전통적인 권위는 날이 갈수록 약해졌습니다.
헌종의 짧은 삶과 왕실 여성들
헌종은 1849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위 기간 15년, 너무나 짧은 삶이었습니다. 헌종에게는 두 명의 왕비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왕비 효현왕후 김씨는 혼인한 지 3년 만에 열여섯 나이로 죽었습니다. 두 번째 왕비 효정왕후 홍씨는 헌종보다 오래 살았지만, 역시 후사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왕비조차 이렇게 비극적인 삶을 살았으니, 그 아래 대군부인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헌종 시대는 왕실 전체가 시름에 잠긴 시대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했습니다. 자연재해가 잦아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왕실 여성들은 더 이상 이전 시대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기 어려웠습니다.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보여주는 궁중의 화려함은 그 시대 현실을 유쾌하게 비틀어 만든 픽션입니다. 실제 헌종 시대 왕실은 그보다 훨씬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황혼을 견딘 여성들
헌종 이후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말기에도 대군부인들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대군부인들은 이전 시대의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습니다. 나라가 기울어가고, 전통적인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일본의 간섭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왕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하거나 영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왕실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더 많은 감시와 제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 왕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조선의 전통을 지키려 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아이들에게 한글과 예법을 가르치고, 왕실의 의례를 이어가는 것. 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이 작은 것들을 지키려 한 여성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노력이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조선의 문화를 일부나마 기억하고 재현할 수 있는 것은 그 여성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의빈 성씨와 대군부인, 후궁과 적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