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나라〉는 고려 말에서 조선 건국 초기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성계가 새 왕조를 열고, 정도전이 설계한 나라의 틀이 만들어지던 그 시절. 역사의 큰 물결 속에서 개국 공신 가문의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조선 건국에 기여한 공신은 크게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불립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데 직접 기여한 사람들로, 이 칭호를 받은 사람은 총 52명이었습니다. 이들과 그 가족은 조선 최상위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공신 가문의 여성들, 특히 공신의 딸이나 공신의 아내들은 개국 초기에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일부는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대군부인이 되었고, 일부는 왕비나 후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첫 번째 왕실 여성들이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시절, 이들은 몸으로 직접 그 틀을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정도전과 그 가문의 여성들
정도전은 조선의 설계자라 불릴 만큼 조선 건국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전도 1398년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도전의 아내와 자녀들의 운명도 비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도전의 아내는 역적의 아내가 되어 그 신분이 크게 추락했습니다. 직접 처형당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정도전의 딸들은 이미 다른 가문에 시집을 간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역적이 되면서 그들의 결혼 생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남편 가문에서 정도전의 딸을 계속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이 빚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국 공신 가문의 여성들은 이처럼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공신이면 최고의 혼처를 잡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역적이 되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이성계 측근 가문의 여성들
이성계의 측근 중에는 조준, 남은, 배극렴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가문에서도 여성들이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특히 조선 건국 초기에는 왕실과 공신 가문 사이의 혼인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왕실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가문과 혼인을 맺어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 했고, 공신 가문 입장에서는 왕실과의 연결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쪽 가문의 딸들이 혼인의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것을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가문의 명예와 발전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였겠지요. 하지만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혼인 대상이 결정되는 것은 분명히 여성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여성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새 나라의 첫 번째 여성들이 남긴 것
조선을 세운 사람들의 여성 가족들은 새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처음으로 만들어간 세대입니다. 어떤 의례를 어떻게 치를지, 왕실 여성들이 어떤 복식을 입을지, 어떤 방식으로 서로 존댓말을 쓸지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정해졌습니다. 고려의 관습을 따르는 것과 새로운 조선만의 방식을 만드는 것 사이에서, 이 여성들은 매일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가문 전체에 화를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나의 나라〉가 그리는 건국의 이야기는 남성들의 칼싸움과 정치 게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또 다른 절반, 즉 그 모든 것을 집 안에서 지켜보며 가족을 지키고 새 나라의 일상을 만들어간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억되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남편 사후 과부로 살아간 대군부인들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