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봉환이 게 눈 감추듯 먹던 그 음식의 정체


저 사실 사극을 잘 안 봐요.

갑옷 입고 말 타고 싸우는 장면, 복잡한 왕실 정치 싸움, 고어체 대사들— 퇴근하고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을 때 그런 거 따라가기가 영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사극은 그냥 패스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철인왕후는 달랐어요.

아내가 “이거 한번만 봐봐, 웃겨” 하길래 옆에서 반쯤 스마트폰 보면서 틀어줬는데, 1화 끝나기도 전에 폰을 내려놨습니다. 신혜선이 왕후 몸에 들어간 현대 남자 봉환으로 빙의된 채 처음으로 수라상을 마주하는 그 장면—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저도 같이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어요.

그 날 밤이 문제였습니다. 밤 열한 시 넘어서까지 붙어서 보다가, 결국 배달 앱을 켰어요. 나이 오십이 넘어서 새벽 국밥을 시킨 겁니다. 아내는 자고 있었고, 저 혼자 뚝배기 들고 소파에 앉아서 남은 화를 봤어요. 후회는 없었습니다. 딱 하나, 다음 날 아침 위가 좀 항의한 것 빼고는요.


철인왕후 먹방의 뭔가 다른 점

왕후가 아니라 봉환이 먹는다는 설정의 천재성

드라마 먹방 장면이야 워낙 많죠. 요즘 드라마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 안 나오는 드라마가 없어요.

근데 철인왕후 먹방이 특별히 강렬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먹는 사람이 왕후가 아니라 봉환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왕후라면 수라상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그 예법이 있잖아요. 단아하게, 소식하게, 눈도 잘 안 마주치고. 근데 거기 들어간 건 현대 청와대 셰프 출신 남자입니다. 그러니까 먹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갈비찜을 앞에 두고 눈을 빛내면서, 젓가락질도 호쾌하게, “이야 이게 진짜 갈비찜이네” 하는 표정. 신혜선이 그 감정을 얼굴 하나로 다 표현해내는데, 그 해방감이 화면 밖으로 그대로 전달돼요.

왕후의 몸에 갇혀 있는 사람이 억눌렸던 모든 것을 음식으로 푸는 느낌. 그게 시청자한테도 대리만족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나도 같이 그 수라상에서 허겁지겁 먹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였어요.

조선 궁중 음식이라는 배경이 주는 묘한 웅장함

수라상이라는 게 보통이 아니잖아요. 조선시대 왕과 왕후의 밥상은 기본이 열두 첩, 많게는 수십 가지 반찬이 올라갑니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수라상 세팅 장면, 그릇 하나하나 내려놓는 소리, 색깔별로 가지런히 배치된 찬들— 이게 시각적으로 굉장히 풍요롭게 느껴져요.

현대에서 그 화려함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 드라마를 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고, 동시에 입이 당기는 거예요.

봉환이 그 수라상 앞에서 “이게 다 나를 위한 거야?” 하는 표정으로 앉을 때, 시청자도 같은 기분이 됩니다. 나도 저 밥상 앞에 앉고 싶다는.


가장 강렬했던 그 장면 — 갈비찜 앞의 봉환

봉환이 갈비찜을 만났을 때

철인왕후 초반부에서 제가 가장 침을 많이 흘린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갈비찜 장면이에요.

왕후 몸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수라를 받게 된 봉환이, 큼직한 갈비 토막이 담긴 갈비찜 그릇을 발견하는 순간의 그 눈빛. 조선 시대 왕후가 해서는 안 될 표정인데, 신혜선이 그걸 얼마나 리얼하게 표현하는지— 보는 사람이 다 웃으면서도 동시에 입에 침이 고여요.

그 갈비찜이 그냥 갈비찜이 아니에요. 화면에 클로즈업된 갈비 색깔이 짙은 갈색, 윤기가 흐르고, 뼈에서 고기가 스르르 들릴 것 같은 그 질감. 간장과 배, 마늘로 오랫동안 졸여서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그 색감. 드라마인데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진짜로요.

봉환이 젓가락으로 갈비 토막을 집어서 한입에 뜯는 그 장면에서 저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습니다. 옆에 아내가 “뭐해” 했는데 대답도 못 했어요. 눈을 못 뗐거든요.

왜 그 장면이 그렇게 강렬하냐면

갈비찜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맛이에요. 명절이면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냄새, 압력솥 소리, 뚜껑 열 때 올라오는 달콤하고 진한 증기. 그 기억이 다 있잖아요.

근데 드라마에서 볼 때 그게 단순히 음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봉환이 느끼는 해방감이 더해집니다. 현대에서 청와대 셰프로 매일 남을 위한 음식만 만들다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그 해방감.

그 감정이 갈비찜 한 토막에 다 담겨 있어요. 그러니까 맛있어 보이는 걸 넘어서 뭔가 뭉클하기까지 한 거예요. 이상하죠? 갈비찜 보고 뭉클하다니. 근데 그게 철인왕후 먹방의 힘이에요.


갈비찜, 아는 맛이 무섭다는 게 이런 거다

갈비찜의 맛을 언어로 설명하면

갈비찜을 모르는 사람한테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아요. 단순히 “달달하고 짭짤한 소고기 찜”이라고 하면 너무 부족하거든요.

진짜 잘 된 갈비찜의 맛은 레이어가 있어요.

첫 번째 레이어는 달콤함입니다. 배즙이나 사과즙이 들어가서 과일의 단맛이 베이스에 깔려요. 설탕의 단맛이랑은 달리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단맛이에요.

두 번째 레이어는 짭조름함. 간장이 베이스라 짭짤한데, 그냥 짠 게 아니라 감칠맛이 같이 와요. 소고기에서 나오는 콜라겐, 뼈에서 우러나는 성분들이 국물을 진하게 만들어요.

세 번째 레이어는 고기 자체의 풍미. 갈비는 지방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뼈 근처 고기가 특히 맛있어요. 오래 조리면 지방이 녹아들면서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씹을수록 육즙이 나와요.

거기에 당근과 무가 같이 들어가서, 달큰하게 졸아든 채소의 맛이 간간이 섞이고요. 국물이 졸아들수록 농도가 진해지고 윤기가 생기면서, 고기 표면에 코팅처럼 달라붙는 그 글레이즈.

이 모든 게 합쳐진 갈비찜 한 점을 밥 위에 올려서 먹을 때의 그 맛. 설명하면서도 침이 고이네요, 진짜로.

아는 맛이라 더 무서웠다

철인왕후에서 그 갈비찜 장면이 무서웠던 이유가 여기 있어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낯선 음식이었다면 “오, 저거 먹어보고 싶다” 정도로 끝났을 거예요.

근데 갈비찜은 알아요. 그 맛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화면에서 보는 순간 뇌가 알아서 그 맛을 재현해요. 달달하고 짭짤하고 부드러운 그 감각이 입 안에서 이미 시뮬레이션이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야식 유혹의 가장 치명적인 형태입니다. 모르는 맛은 상상이지만, 아는 맛은 기억이에요. 기억이 불러오는 식욕은 훨씬 더 강렬해요.

저는 그 날 밤 결국 국밥으로 타협했지만, 머릿속엔 갈비찜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새벽 배달 국밥, 그리고 주말의 갈비찜 도전기

그 날 밤의 타협 — 새벽 국밥

철인왕후 4화까지 연달아 봤을 거예요. 시계가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봉환이 수라상에서 신나게 먹는 걸 보다 보니 위에서 신호가 왔어요.

갈비찜은 배달이 안 되는 시간이었어요. 새벽 1시 넘어서 갈비찜 배달해주는 집이 그리 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24시간 배달되는 국밥집을 찾았습니다. 순댓국이었어요.

사실 순댓국은 갈비찜이랑 결이 다른 음식인데, 그 순간만큼은 뜨겁고 진한 국물이 필요했어요. 철인왕후 보면서 느낀 그 풍요롭고 뜨거운 감각을 채워줄 뭔가가. 순댓국이 그 역할을 해줬습니다.

뚝배기로 왔는데, 새우젓 넣고 쑥갓 얹어서 한 숟갈 떴을 때의 그 만족감. 드라마 속 수라상은 아니지만, 나만의 새벽 수라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남은 두 화를 그렇게 봤습니다. 위는 다음 날 아침에 좀 항의했지만요.

주말에 갈비찜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마트에서 소갈비 1킬로그램을 샀어요.

갈비찜은 공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에요. 귀찮다고 대충 하면 맛이 확 떨어지거든요. 주말에 시간 여유 있을 때 제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만드는 궁중식 갈비찜 — 핵심 순서

1단계: 핏물 빼기 (최소 1시간)

갈비를 찬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야 해요. 이걸 대충 넘어가면 잡내가 남아서 맛이 달라집니다. 최소 한 시간, 중간에 한 번 물 갈아주면 좋아요. 급하면 찬물에 여러 번 헹구는 걸로 대체할 수 있는데, 어차피 기다리는 김에 제대로 하는 게 낫더라고요.

2단계: 한 번 삶아내기

핏물 뺀 갈비를 냄비에 넣고 물 부어서 한 번 끓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거품이 많이 올라오는데, 다 걷어내야 해요. 이 단계가 잡내를 잡는 두 번째 관문이에요. 5~10분 정도 끓이고 나서 갈비를 건져서 찬물에 씻어줍니다.

3단계: 양념 만들기

여기가 핵심이에요. 간장 5큰술, 배즙 반 컵(없으면 사과즙이나 키위즙), 설탕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생강 반 티스푼, 참기름 1큰술, 후추 약간. 이걸 다 섞어요. 배즙이 고기를 연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시판 배즙 써도 됩니다. 이게 없으면 식감이 확 달라져요.

4단계: 조리기

깨끗이 씻은 갈비를 양념에 넣고 버무려서 30분 이상 재워요. 재워두는 동안 당근, 무를 큼직하게 썰어두고요. 냄비에 갈비 넣고 물 두 컵 추가해서 처음엔 강불, 끓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줄여서 40분 이상 졸여요. 중간에 한 번씩 뒤집어주고, 국물이 줄어들면서 갈비에 윤기가 생기기 시작할 때 당근이랑 무 넣어요. 채소가 익을 때까지 15분 더.

5단계: 마무리

국물이 적당히 졸아서 갈비 표면에 달라붙을 정도면 완성이에요. 참기름 한 방울 더 두르고, 잣이나 달걀 황백 지단 올리면 궁중식 느낌이 더 나요.

먹어본 후기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좀 긴장했어요. 공 많이 들였는데 맛없으면 허탈하잖아요.

결과는요. 생각보다 훨씬 잘 됐어요.

고기가 뼈에서 적당히 떨어질 만큼 부드러웠고, 국물 농도가 딱 좋게 졸아들었어요. 당근은 안쪽까지 달달하게 익었고, 갈비 표면에 코팅된 양념이 짭달콤하게 윤기 났고요. 밥 위에 국물 얹어서 한 숟갈 먹었을 때, 진짜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아내가 “언제 이런 거 배웠어?” 했어요. 철인왕후 덕분이라고 했더니 피식 웃더라고요.


철인왕후 속 수라상이 알려준 것

드라마 보면서 새삼 느낀 게 있어요.

조선시대 궁중 음식이 단순히 화려하고 비싼 게 아니에요. 그 안에 계절이 담겨 있고, 재료를 다루는 손길이 담겨 있고,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드라마에서 봉환이 수라를 먹으면서 “이게 다 계절 재료야, 이렇게 신선해?” 하고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셰프 눈으로 조선 음식을 재발견하는 그 시선이 흥미로웠습니다.

현대에서 냉동 갈비로 간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제철 재료에 시간 공들여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걸 철인왕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저는 마트 냉장 갈비로 만들었지만요. 그래도 핏물 빼고 두 번 손질하고 재워뒀다가 오래 졸인 그 과정이 맛에서 차이를 만들어냈어요.


오늘 저녁은 갈비찜 어때요

철인왕후 아직 안 보신 분들,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사극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 저처럼 사극 기피자셨다가 한 화 보고 완전히 빠진 분이 주변에도 여럿 있어요.

신혜선의 연기가 정말 볼수록 매력 있어요. 먹방 연기만 봐도 드라마 값을 합니다. 그 해맑으면서 복잡한 눈빛으로 수라상 앞에 앉는 봉환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배가 고파지는 마법이 생겨요.

그리고 드라마 보면서 갈비찜 생각나면, 이번 주말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핏물 빼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그 기다리는 동안 드라마 한 화 더 보면 되잖아요.

다음에는 철인왕후에서 봉환이 현대 음식을 그리워하며 조선에서 재현하려는 에피소드랑 연결해서 더 얘기해볼게요. 사극 속에서 치킨을 그리워하는 봉환이 너무 공감돼서 혼자 빵 터졌거든요.

오늘 저녁 메뉴 정하셨나요? 아직이라면, 갈비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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