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좀비 역병이 퍼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좀비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조선 시대에 전염병이 왕실을 위협한 것은 실제 역사입니다. 천연두, 콜레라, 이질, 말라리아 같은 병들이 조선 전역을 휩쓸었고, 왕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왕도 죽고, 왕자도 죽고, 왕비도 역병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군부인들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의녀(醫女)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남성 의원이 왕실 여성을 직접 진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여성 의원인 의녀를 별도로 양성했습니다. 의녀들은 왕실 여성들의 건강을 전담했습니다. 하지만 의녀가 항상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일상적인 건강 관리는 대군부인 본인과 가족이 맡아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대군부인들이 기본적인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약초를 구별하고, 간단한 처방을 아는 것이 왕실 여성의 교양 중 하나였습니다.
동의보감과 왕실 여성들
1613년 허준이 완성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조선 의학의 집대성입니다. 25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의학 백과사전에는 각종 병의 증상과 치료법, 약재의 효능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왕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도 일부 기록되었습니다. 대군부인들은 동의보감을 통해 의학 지식을 쌓았습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부분은 왕실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습니다. 왕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도 어린 나이에 여러 차례 출산을 반복하다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군부인들은 임신 중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아이가 아프면 어떤 약초를 써야 하는지를 스스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의녀가 있어도 최종 결정은 어머니인 대군부인의 몫이었습니다. 자녀의 생사가 달린 순간에, 그녀들의 의학 지식은 단순한 교양을 넘어 생존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역병의 시대, 왕실의 대응
조선 역사에는 대규모 역병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에 역병까지 겹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병이 창궐하면 왕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왕실 내의 이동이 제한되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제사나 연회 같은 왕실 행사도 취소되거나 규모가 줄었습니다. 대군부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집 안에 머물며 가족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약재를 태워 연기를 피우거나, 특정 음식을 먹거나, 부적을 붙이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미신적인 것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대군부인들이 역병 치료에 직접 나선 사례가 기록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집 안의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약을 직접 달여 먹이고, 간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드라마 〈킹덤〉이 보여주는 역병의 공포가 얼마나 현실적인 것이었는지, 실제 역사 속 기록들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공포 속에서 가족을 지킨 것은 다름 아닌 이 여성들이었습니다.
의학 지식의 전수
대군부인들이 쌓은 의학 지식은 대를 이어 전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약초 지식과 간단한 처방법을 전수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활 지식의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는 여성들이 대대로 이어온 지혜의 전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 여성들이 직접 의학 서적을 읽고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동의보감이 보급된 이후, 한글을 아는 여성들은 이 책을 통해 의학 지식을 스스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상상하는 역병의 세계와 실제 역사 속 역병의 세계. 그 두 세계를 잇는 다리에 대군부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궁중 음모 뒤에, 실제로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약초를 달이고 간호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선판 상속 전쟁, 대군부인의 재산권과 경제적 지위를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