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를 보면서 가장 머리가 복잡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차시영 장면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이 도대체 아군인지 적군인지, 회를 거듭할수록 더 헷갈렸다. 강태주와 공조하면서도 뒤에서 칼을 갈고 있는 것 같고, 악당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순간엔 가장 인간적인 면이 비어져 나왔다. ‘허수아비’가 단순한 범죄 수사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물들이 선명하게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움직이고, 그 이유들이 충돌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드라마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인물 구조가 단순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한 형사가 범인을 쫓는 이야기. 그런데 한 회 한 회 볼수록 인물들이 훨씬 복잡한 층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군인 줄 알았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적군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따뜻함이 나온다. 처음에는 배경으로만 보였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이야기의 핵심을 건드린다. 그 복잡함을 한 번쯤 정리해두고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드라마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그리고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을 기준으로 정리해봤다.
주인공 진영: 진실을 쫓는 세 사람
강태주 (박해수): 이 드라마의 감정적 중심
강태주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지만, 전형적인 영웅 형사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에서 좌천되어 고향 강성으로 돌아온 그는, 집요한 관찰력과 직감으로 연쇄살인사건에 뛰어들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다.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외부의 적만이 아니다. 30년 전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긴 세월이 그를 내부에서 갉아먹는다. 2019년의 강태주는 프로파일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서 있다. 겉으로 보면 정돈된 삶이지만, 진범 이용우와 마주하는 순간 그 정돈된 표면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박해수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게 처음에는 반가웠고, 회를 볼수록 그 선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실감했다. 강태주는 분노할 때 분노하고, 무너질 때 무너진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캐릭터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의 솔직함이 강태주를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만든다. 전경호를 폭행하고 파면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를 탓하기보다 이해했다. 그 정도 상황이면 누구든 그랬을 것이다. 강태주는 완벽한 형사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다 자꾸 어긋나는 사람이다. 그 어긋남이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다.
서지원 (곽선영): 드라마에서 가장 믿음직한 존재
서지원은 강태주의 국민학교 동창이자 강성일보 기자다. 겉으로 보면 세 주연 중 비중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서지원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그녀는 1988년부터 연쇄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인물이다.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언론 통제 속에서도,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버텨왔다. 드라마 속에서 목숨을 건 취재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곽선영이 연기하는 서지원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안도감이었다. 이 드라마는 불신과 배신으로 가득한 세계를 그리는데, 그 속에서 서지원만큼은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 강태주가 흔들릴 때 옆에 있고, 사건의 맥락을 넓혀주는 시선을 제공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드라마 속에서 종종 방해꾼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허수아비’의 서지원은 다르다. 그녀의 취재는 진짜로 사건을 움직이고, 그 신념이 진지하게 다루어진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 같은 존재. 세 주연 중 내가 가장 마음을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이 서지원이다.
경계 위의 인물: 아군도 적군도 아닌 차시영
차시영 (이희준): 이 드라마의 진짜 미스터리
솔직히 말하면, 차시영을 정리하는 게 가장 어렵다. 이 인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려 하면 자꾸 실패한다. 냉철한 엘리트 검사. 강태주의 오랜 악연. 권력을 위해 진실을 묻을 수 있는 사람. 이 설명들이 모두 맞지만, 동시에 전부는 아니다.
차시영과 강태주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 같은 대학에 가자고 약속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는데, 어떤 계기로 차시영이 강태주를 배신하고 학교폭력을 주도하게 됐다. 그 ‘어떤 계기’가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씩 밝혀지는데, 알면 알수록 단순히 나쁜 놈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워진다. 아버지 차무진과의 관계, 강태주 어머니와 얽힌 과거,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만들어낸 뒤틀린 경쟁심. 차시영이 강태주를 괴롭혔던 이유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복잡한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6회에서 이기범의 거짓 자백을 차시영이 사실상 지시했다는 게 밝혀졌을 때,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다음 장면에서 차시영의 흔들리는 표정을 보면서 다시 복잡해졌다. 이희준이라는 배우가 이 역할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가 그 표정 하나에서 느껴진다. 차시영은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선택을 아무 감각 없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게 이 인물을 단순한 악역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적군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아군처럼 행동하고, 공조하는 순간 또 뒤를 찌른다. ‘허수아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 차시영이다.
용의자들: 아직도 미궁 속에 있는 이름들
이기범 (송건희): 누명의 무게를 짊어진 청년
이기범은 강순영의 약혼남으로, 4회부터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기 시작한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손수건이 강순영의 것과 같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 정황들이 그를 가리키면서 강태주도, 시청자도 한동안 이기범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6회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이기범은 감금과 폭행, 협박에 의해 거짓 자백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뒤에 차시영이 있었다.
이기범 장면들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 억울함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실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강압 수사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허구의 인물이 겪는 일이 단순한 드라마적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기범은 지금 시점에서 누명을 벗었지만, 그 누명이 그에게 남긴 상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가 계속 신경 쓰인다.
임석만 (백승환): 7회의 새로운 변수
7회에서 새롭게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임석만이다. 이기범의 불법 체포를 목격한 증인으로 처음 등장했는데, 강태주가 그를 찾아가 증언을 부탁하려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강순영의 범인 목격담과 방사성 동위원소 검사 결과가 임석만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직 이 인물에 대해 단정 짓기는 이르다. 하지만 경찰서 진술실에서 강태주와 마주 앉은 그의 표정, 억울하고 답답한 기색 속에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눈빛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이기환 (정문성): 형의 그늘 뒤에 있는 인물
이기범의 형 이기환은 아직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강태주가 이기범과 이기환 형제를 동시에 의심하는 장면이 나온 만큼, 이 인물이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앞으로 더 밝혀질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장면들만 보면 이기환은 조용하고 무게감 있는 인물인데, 그 무게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가 자꾸 궁금해진다.
진범과 주변 인물들: 이미 드러난 얼굴들
이용우 (?): 공개된 진범, 공개되지 않은 얼굴
‘허수아비’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드라마 초반부터 진범 이용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수사물이 마지막 회에서 범인을 공개하는 방식과 달리, 이 드라마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처음부터 보여준다. 대신 배우가 공개되지 않아 그 자체로 미스터리가 되고 있다. 이용우는 교도소에서 검거 이후에도 여유로운 미소로 강태주를 도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태도가 소름 돋는 이유는, 이미 앞선 글들에서 분석한 것처럼 실제 이춘재의 태도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범행 건수도 이춘재의 실제 자백 내용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용우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됐는지를 알 수 있다.
강순영 (서지혜): 가장 가까운 거리의 피해자
강순영은 강태주의 동생이자 이기범의 약혼녀다. 드라마에서 그녀는 전경호와의 사고로 중상을 입고, 범인의 목격자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건이 얽히는 구조를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동생이라는 설정이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강순영이 겪는 일들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계속 상기시켜준다.
차무진 (유승목): 보이지 않는 손
차시영의 아버지 차무진은 드라마 속에서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인물이다. 아들의 수사에 개입하고, 기자회견 장면에서도 그의 존재감이 사건의 방향을 좌우한다. 차시영이 왜 그렇게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차무진을 봐야 한다. 부자(父子) 관계가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더 전개될지가 궁금한 인물이다.
김만춘 반장 (백현진): 묵직한 중간 지점
베테랑 형사 김만춘 반장은 강태주와 함께 수사하는 인물이다. 백현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내공이 이 역할에 잘 녹아 있다. 강태주가 흔들릴 때 묵묵히 곁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 오래된 형사로서 조직 내부의 현실을 체화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현실적인 중간 지점의 인물. 이런 캐릭터가 있어야 드라마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고 느껴진다.
인물 구도 한눈에 보기
| 구분 | 인물 | 역할 |
|---|---|---|
| 주인공 진영 | 강태주 (박해수) | 형사·프로파일러, 진실 추구 |
| 주인공 진영 | 서지원 (곽선영) | 기자, 단서 제공·신념 |
| 경계 위 | 차시영 (이희준) | 검사, 공조하지만 야망 우선 |
| 진범 | 이용우 (미공개) | 강성 연쇄살인 진범 |
| 용의자 | 이기범 (송건희) | 누명 씌워진 청년 |
| 용의자 | 임석만 (백승환) | 7회 신규 용의선상 |
| 용의자 | 이기환 (정문성) | 이기범의 형, 미스터리 |
| 피해자 주변 | 강순영 (서지혜) | 강태주 동생, 목격자 |
| 권력 구조 | 차무진 (유승목) | 차시영의 아버지, 배후 |
| 수사팀 | 김만춘 (백현진) | 베테랑 형사 반장 |
마치며: 이 드라마에서 진짜 적은 누구인가
인물관계도를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건, ‘허수아비’에서 단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용우는 진범이지만, 드라마는 그를 단순한 악마로 그리지 않는다. 차시영은 나쁜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의 뿌리를 드라마는 외면하지 않는다. 이기범은 누명을 쓴 피해자이지만, 그가 완전히 무고한지도 아직 모른다. 임석만은 새로운 용의자이지만, 그의 억울한 표정도 외면하기 어렵다.
이 드라마의 진짜 적은 어쩌면 특정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권력 구조, 약자를 희생시켜 사건을 봉합하려는 시스템, 그리고 공포 속에서 침묵을 선택한 시대의 분위기. 그것들이 진짜 적이고, 강태주는 그 모든 것과 싸우고 있다. 인물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 드라마의 함정일 수 있다. ‘허수아비’는 그 단순한 이분법을 계속 흔들면서, 훨씬 더 불편하고 훨씬 더 진짜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이 글은 2026년 5월 11일 기준 방영된 7회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후 전개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나 포지션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